형이 차를 사줬다.

형이 차를 사줬다. 기분 좋은 마음으로 경쾌하게 집으로 가는 길에 동네 친구인 준택이를 만났다. "좋은 일이 있구나. 즐거워 보인다!" 그가 말했다. "하하! 형이 여유가 생겨서 나에게 차를 선물 했어" 나는 그가 묻지도 않았는데 내가 기분 좋은 이유를 설명했다. "부럽다. 정말 부럽다." 그가 말했다. 나는 우쭐한 기분으로 "헤헤"하고 웃었다. 그가 내 웃음에 말을 이었다. "나도 네 형처럼 내 동생에게 차를 사줄 수 있는 형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갑자기 우울해졌다.
텅스텐 필라멘트가 열 받아서 핑하고 끊어짐과 동시에 퍽하고 나가버리는 백열 전구와 같이 힘겹게 내쉬던 숨이 한순간에 머추셨다.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도시 안에 있는 병원의 탁한 공기와 당신의 성에 차지 않는 간병인의 간호에 화가나서 누구의 도움없이 숨쉬기를 거부하셨다.

내가 생각하는 아버지는 그야말로 왕자에 센님이셨다. 중학교 시절까지 동네에 있는 학교 선배에게 업혀서 통학하셨다. 마르고 약한 체력인데다 시골 마을 유지인데다 이장인 할아버지의 후광으로 그�게 소극적으로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 이 후에 내가 커서 성인이 될때 까지도 상투 잘린 양반 처럼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나 올바른 호령 하지 못하며 근근히 도시 생활을 견디셨다.

오늘 같은 날, 니체가 세상은 언제나 회귀한다고 증명하지 않더라도 아버지의 습성이 나에게 전사되어 또 한사람이 방전하며 살고있는 것을 느낀다.

아버지

"흐흐~하,흐흐~하,.". 계속 가쁜 숨을 쉬고 계신다. 가끔 힘이 드실 경우 1초정도 쉬시다, 다시 "흐흐~하, 흐흐~허"하고 어려운 숨을 내쉰다.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면 나는 아버지로 부터 살가운 가족의 느낌을 받아 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평생을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11시에 퇴근하셔서 마땅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없었다.
일요일이 되어 아버지와 같이 대중 목욕탕에 갔던 기억만 있다. 이후로 나이가 들어 사춘기를 지나 청년이 될때 까지 아버지에게 마땅히 표현을 할 여지가 없었다. 그저 아버지일 뿐이었다.
단계적 절차에 필요한 감정적 교류가 없었으므로 이상의 관계 발전의 필요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 내가 어른이 되 었을 때 아버지는 힘이 다되신 할아버지가 되어 계셨다. 40 년 동안의 미완의 관계는 개선의 필요도 발전의 노력도 필요없었다.
어정쩡한 관계로 더 시간이 지나 아버지는 "허허~헉.." 숨을 내쉬며 지금, 기약 없는 오늘 내일에 기대신다.